No. E-017 발가락 양말
No. E-017
발가락 양말
I
오전 6시 30분!
나의 기상 시간이다.
누운 채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머리맡에 두었던 발가락 양말을 신는다.
그리고는 바지와 윗 옷을 걸치고
미지근한 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이러한 일상은 내게 익숙하다.
수년 전의 일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목사님 한 분이 있다.
우리는 간헐적으로 만남을 가진다.
그분 댁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함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눈다.
그분을 만날 때마다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분의 발이다.
신기하기도 우스꽝스럽기도 한 발가락 양말!
또 한 사람이 있다.
한 제자의 부형(父兄)이다.
이분 가정에도 가끔 방문하곤 한다.
그때마다 또 내 눈에 뜨인 것은
그분의 발가락 양말을 신은 모습이다.
그동안 신은 걸 본 적도 신어 본 적도 없는 것을
주위의 지인(知人)들을 통해 보게 된 것이다.
II
언젠가 아내와 함께 백화점에 간 날이다.
머릿속엔 연어초밥을 상상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돌아 긴 복도를 지나다가
한 자판대 앞에서 내 몸은 굳어져 있다.
와~아! '발가락 양말'이다.
두 켤레는 오천 원, 만 원 엔 다섯 켤레를 준단다.
내 시선을 기회라 여긴 직원의 권유가 시작된다.
'나 이것 신어보고 싶은데..'라며
어린아이가 엄마를 조르듯 아내의 얼굴을 훔친다.
두 켤레 발가락 양말을 식탁 한편에 둔 점심이 맛있다.
밥을 먹는 내내 머릿속에는 이들 생각뿐이다.
이 양말을 신으면 어떤 느낌일까?
어떤 기분이 들까?
마냥 새 장난감을 사들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어린아이가 영락없다.
III
이후로 발가락 양말은
나의 친숙한 애장품이 된다.
추운 겨울이면 신어 오던
도톰하고 포근한 수면(睡眠) 양말 이상으로 정(情)이 간다.
물론 첫날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내 평생 양말 하나 신는데
그렇게 오래 걸린 적이 없었다.
열 명의 아이들 하나하나 제 모자를 씌워주는 일이...
대체 얘들이 감각이 없다.
수십 년(年)을 한 울타리 속에 갇혀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온 얘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열 명의 아이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어 준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새 장난감에 밤을 지새우던 어린 시절의 동심(童心)까지
이 발가락 양말이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동안 두 덩어리처럼 느껴졌던
열 개의 발가락들이 자유(自由)를 찾은 것이다.
이제 이 양말을 신는데 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다.
내가 신겨주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알아서 들어간다.
가끔 자신의 보금자리를 착각해
남의 자리를 기웃거리며 수줍어하던 넷째와 다섯째도
이젠 첫째만큼이나 날렵하다. 익숙해지는데 한~참이 걸렸다.ㅋㅋ
IV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이들을 태운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오늘이라는 삶의 지평(地平)을 연다.
선장의 구령 소리에 맞춰
1분간의 발가락 운동으로 아침을 맞는다.
각각 두 배에 배치된 10명의 선원들은
자신의 임무를 위해 '하루'라는 생명의 노를 저어갈 것이다.
한편 열 손가락 못지않게
열심히 주인을 섬겨 온 얘들인 것을 생각하면
기특하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어느새 10여 년을 누려오는 이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외출 준비를 하면서
발가락 양말을 신고 있는 나를 본 아내가 말한다.
다른 집을 방문할 때 이 양말을 신고 있으면
무좀 있는 사람으로 오해한다고...
그래서 따로 두었던 일반 양말을 신었는데 영 편치가 않다.
나도 얘들도 힘든 하루였다.
얘들과 내가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손에 집어 든 국어사전이 말한다.
발가락 양말이란
발가락 부분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양말로서
무좀과 같은 발가락에 생기는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목적으로 신는다고...
백선균(피부진균증을 일으키는 세균)에 의한
피부병의 하나인 '무좀'이 없다면,
아마 발가락 양말이란 것도 없겠다 라고 생각하니
이 무좀이라는 것이 싫지 만은 않다.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무좀이지만,
다른 이들이 오해를 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나의 발가락들이 누리는 자유에 비하면
내가 받을 오해의 부담감은 새발의 피다.
오히려 발가락 양말을 신는다고
무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그들이
자신들의 자유해야 할 발가락들을
억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동정심마저 든다.
그렇지 무좀아?!
너는 모든 발가락들의 자유가 되는구나!
누가 너를 밉다 하며, 무엇이 너를 정죄(定罪)하겠니...
By Steve Jeong
* * *
p.s. : 무좀이 발가락 양말을 그리고 자유를... 율법 또한 진리를 그리고 자유를!
무좀도 율법도 자유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