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E-34
'역사적 예수 논쟁'에 대한 소견
I.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 연구'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재는 '역사적 예수 논쟁'과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 동향'이다.
이 과목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희비'를 메모해 본다.
II.
'복음서 연구'에 대한 교수의 강의는
더 이상 성경적 관점의 차이로 인한 외톨이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환언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고 있음을 맛보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공부하게 된 동기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 논쟁'에 대해서는
'무거운 마음'과 '문제의 난해함'을 감출 수 없다.
신학자들의 각기 다른 관점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이단의 길을 가고 있음을 본다.
이것이 '신학'이라는 미명아래
당연시 되는 그들의 논쟁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또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그 당시의 복음서 저자나
사도들의 증언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 자료의 불충분이나 불명확성 등은 고사하고,
항상성이 결여된 비진리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인본주의적 관점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에
'역사적 예수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결국 실익 없는 허상을 쫓는 것일지도 모른다.
첨언하면, 어제의 자신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지적 성장은 계속된다.
이를 통해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른 관점의 변화를 경험한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른 관점의 변화로 이어진다.
성경을 보는 관점이나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점 또한 이와 같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마음이 담긴 그릇이다.
복음서의 말씀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 보다 더 나은 복음은 없다.
이 길을 벗어나 또 다른 예수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III.
어제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오늘 '비진리'가 되어 있음을 경험하게 됨은
생각하며 사는 이들의 일상이요 여정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된다는 성경적 가치를 깨달아 알기까지 계속된다.
돌이켜보면 '역사적 예수'라는
홍역의 요단강을 이미 건너 온 것이 큰 위안이 된다.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린 자'만이 전심으로 진리를 향할 수 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막 12:27),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귀 있는 자는 들어라'(마 13:9) 등...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에서
'나를 듣지 말고 내 말을 들어라'는 묵시의 음성이 들려옴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 by Steve Jeong -
p.s. :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며
마음에 담을 수 없는 것을 품게 되는 그 날까지...
'Essays & Poems'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 E-035 하나님의 사람들... (0) | 2023.01.03 |
---|---|
No. E-033 사람이... (0) | 2021.07.01 |
No. E-032 만남 I (0) | 2021.06.25 |
No. E-031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 (0) | 2021.06.16 |
No. E-030 본성 I (0) | 2021.06.05 |